소소한 일상
사랑니 발치 하던 날
도라다녀
2019. 11. 26. 14:59
20살에 난 사랑니 2개, |
사랑니가 썩고 있어서 27살에 발치하려고 큰 맘먹고 치과에 갔다. |
하지만 내가 간 그 치과는 사랑니 발치를 하지 않는단다. 대학 병원에 가보란다. |
갑자기 김이 세서 사랑니는 제껴두고, 사랑니만 빼고 다른 거 하러 다녔다. |
그후 지금까지 치과 갈때마다 '사랑니가 있네요. 사랑니가 썩었어요. 사랑니 빼셔야 돼요' |
이 말을 20년이나 넘게 지겹게 들어 와서 |
더 이상 발치를 미룰수가 없어 사랑니 발치 전문 치과를 무거운 발걸음로 찾았다. |
사랑니 발치의 고통에 대한 전설이 주변인들의 말과 인터넷에 가득하여 |
겁을 너무 집어 먹어 CT 촬영하는 내내 몸이 덜덜 떨려 멈추지가 않았다. |
아니나 다를까 CT 촬영 에러가 났다..ㅎㅎ 뭐야 이 긴장감. |
촬영을 끝내고 이제는 부분 마취, 턱이랑 입술 반쪽을 마취하는건데 |
마취가 잘 됐음에도 난 간호사님한테 큰일 난 마냥 '저 턱이랑 입이 안 움직여요' 이랬다. |
간호사님이 '원래 그렇게 하는거여요' '아..그런거여요? 저 잘못된 거 아니죠' ㅠ |
애 낳을때도 이렇게 겁먹고 덜덜 떨지 않았는데 대체 나 왜 이러는 건지 너무 무서웠다. |
테이블 위에 은색의 온갖 발치 도구와 주사를 보니 내가 여기 왜 왔을까 하는 후회가 |
스나미처럼 밀려왔다. |
드디어 의사샘이 오시고 내 입안에서 뭔가 자르고 갈고 땅땅땅하는 소리가 들리고 |
무지막지한 공사의 소음속에 내 인생 최초 사랑니 발치가 시작되었다. |
의사샘이 힘들면 왼손을 조용히 들라 했는데, 힘들어서 계속 들었다. ㅎㅎ 계속 |
사랑니 발치 빨리 끝내야 하는데, 환자가 자꾸 손을 드니 의사샘이 나중에 막 내 왼손을 |
무시하고 얼른 얼른 하시는 느낌이였다. |
'이 환자분 진짜 엄살이네'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 |
아무튼 난 너무 무섭고 힘들었다규~ |
여기까지는 실제 사랑니 발치의 과정이였고, 뺏으니깐 괜찮을 줄 알았다. |
여기까지 심리전이였다면, 이후부터 진짜 생물학적 아픔이였다. |
마취가 슬슬 풀리기 시작하면서 세상 끝날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
집에 와서 틀어막았던 거즈를 빼는 순간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고 |
머리도 너무 아프고 열나는 것 같기도 하고 |
물로 입안을 헹군다고 입안에 물을 넣는 순간, 화장실 벽을 치며 고통스러워 했다. |
내가 사랑도 이렇게 아프게 안 했는데, 고작 사랑니 때문에 이렇게 아프다니 |
진짜 사랑니 너, 이름처럼 하나도 사랑스럽지 않거든. |
그렇게 나의 왼쪽 사랑니는 그렇게 떠나갔고 |
아직 오른쪽 사랑니가 외롭게 남아 있다. |
당분간 이 오른쪽 사랑니는 뺄 생각이 없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발치하리. |
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하루다. 사랑니는 얼마나 삶에 진심이였으면 그렇게 빠져나간 자리에 존재감을 크게 내는 걸까. |
그런대로 무서운 하루가 지나고 입이 크게 안 벌어져 잘 먹지 못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
사랑때문에 실연당한 사람이 잘 먹지 못하는 것과 좀 비슷하다. |
그래서 '사랑니'라 이름 붙인건가. |
사랑니, 너 참 얄궃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