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한근 주세요

도라다녀 2020. 6. 3. 16:43
어렸을 때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그 때는 대부분 재래시장이였는데
엄마가 그곳에서 장을 볼 때 상인들에게 '한 근 주세요, 두근 주세요, 또는 한 되박 주세요
한 관주세요' 이런 말들로 물건을 사셨다.
단순히 '한 개 주세요, 두 개 주세요' 가 아닌 근, 되, 관 이란 전문적인 단위의 이름을 써가며
그 시장에서 장을 보셨다.
그 단어들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은 뜻을 나타낸다.

근 : 무게의 단위.
     한 근은 고기나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는 600그램에 해당하고,
     과일이나 채소 따위의 무게를 잴 때는 한 관의 10분의 1로 375그램에 해당한다.
되 : 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
      주로 사각형 모양의 나무로 되어 있다.
      부피의 단위. 곡식, 가루, 액체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되는 한 말의 10분의 1, 한 홉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관 : 무게의 단위. 한 관은 한 근의 열 배로 3.75kg에 해당한다.

지금봐도 뭔가 굉장이 어렵고 375그램이 왜 나왔는지도 의아한데,
어린 시절에 들은 그 단위들은 뭔가 있어 보이고 대단한 것처럼 느껴져
아줌마들 입에서 나오는 그 착착붙는 단위의 아우라가 범접할 수 없이 커 보였고
나는 커서도 저런 포스는 나오지 않겠구나를 막연히 느꼈던것 같다.
요즘은 정육점에서 한근, 두근할 때 쓰는 근을 제외하면
모든 상품이 그램수로 아주 포장이 잘 되어져 나와 '되' '관' 이런말들은 잘 쓰지 않는것 같다.
나도 나름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건 아마 결혼을 하고 신혼때쯤이였던것 같다.
정육점에서 삼겹살을 사려고 '한 근 주세요' 라는 말을 했을때, 뭔가 무지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다.
마치 '근'이라는 단어는 내 언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정육점 아저씨가 삼겹살을 주실 때 까지
그 낯선 시간들을 어색하게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다들 마트를 다니기 때문에 물건을 살 때나 계산을 할 때나 말이 필요없는 세상이 되었다.
물건을 카트에 담고 계산할 때 카드를 내밀고 다시 담고, 그러면 장보기 끝이다.
예전에 엄마가 보여줬던 걸크러쉬 넘치는 짬바는 지방 5일장에나 가면 볼 수 있으려나.
그렇게 그리운 것은 아니나 점점 말이 필요없는 장보기가 삭막하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