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눈치없는 어느 날

도라다녀 2020. 12. 8. 11:51
올해있었던 일 중에 제 눈치 없음의 방점을 찍은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께요.
제가 하는일이 무역 업종이다 보니 일년에 한번씩 관세청 교육을 받으러 가는데요.
6월의 어느날 9시부터 6시까지 하루종일 받는 교육이더랬지요.
커피를 사들고 종종걸음으로 교육실로 들어가니 거의 9시였는데 자리가 없어서
맨 앞쪽에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교육을 받았답니다.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어 옆 건물 '한촌설렁탕'에서 식사를 하라며 관계자분이 식권을 나눠 주셨어요.
근데 제가 거래처랑 통화할 일이 있어 한 3분정도 늦게 식당에 내려갔는데
한촌설렁탕 앞에서 많은 분들이 줄을 서서 식당에 들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아무 의심없이 그 줄이 교육생 줄인줄 알고 거기 서서 다함께 어느 홀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한 오십여명이 있었고 많은 분들이 옆 사람과 떠들고 있었는데
그 때 제가 든 생각은 '벌써 3분만에 이렇게 친해진건가. 정말 사교성이 좋아, 신기하네' 이러면서
어느 빈 자리에 앉게 되었지요.
앞에 앉으신 남자분들이 친절하게 숟가락, 젓가락도 놔주시고, 김치도 잘라서 테이블에 놔주셨어요.
신기하게 테이블마다 맥주병이 몇개씩 놓여있었는데 속으로 ' 요즘은 교육을 받으러 와서 술도 먹나 ? '
세상 참 FREE하게 좋아졌네 '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앞에 앉으신 남자분이
' 저한테 맥주 한잔 드시겠어요? ' 그러는 거여요.
저는 됐다고 손사래를 쳤고, 그 분은 그냥 옆 분과 수다를 떨며 맥주를 마시더라구요.
저는 아는 분이 없어 그냥 휴대폰으로 메일과 카톡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구요.
때마침 설렁탕이 나오고 몇 숟갈 떠먹고 있을 때쯤 그 홀에서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이 일어나더니
올 상반기도 수고했고 앞으로도 우리 부서 더 노력해서 좋은 결실을 얻자 어쩌고 하시는 거여요.
그러더니 다들 건배를 하시는거여요. 어머낫, 오마이갓.
그 때 알았어요. 제가 남의 회사 부서 회식에 왔다는 사실을 ㅎㅎㅎ
어쩐지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첨에 앉을 때 어디선가 자리가 하나 모자라다는 둥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제가 휴대폰 볼때 어디선가 '저 여자 누구지' 웅성거리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부서에 사람이 좀 많으면 잘 모를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다들 나한테 누구냐고 안 물어봤나봐요.
아. 좀 물어보시지. 특히 내 앞에 앉으신 착하고 상냥하신 남자분들. 왜 안물어. 왜 왜 왜 !
남의 회사 부서 회식이라는 힌트가 앞에서 몇 번씩이나 있었는데 눈치없는 제가 못 알아챈거죠.
그런데 여기서 ' 어. 여기가 아니네 ' 하고 그냥 가면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이곳을 떠날 타이밍을 노리다가 설렁탕 몇 숟갈 더 떠먹고
앞의 남자분들한테 '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 하며 당당히 인사를 하고 유유히 빠져나왔습니다.
나오는데 뒤통수에서 '저 여자 누구야' 하는 소리가 백만개로 들리는 환청을 느꼈어요.
다들 이런 경험 있으시죠 ?
담날 사무실에 가서 동료들한테 애기했더니 '언니. 너무 창피하다' 고 하네요. ㅎ
하지만 전 괜찮아요. 사람이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남의 회사 회식도 가고 그런거죠. 뭐
이야기 나온김에 오늘 점심은 설렁탕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