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달리봄

도라다녀 2021. 3. 22. 16:01

어제는 동네의 또 다른 독립서점 ‘달리봄’이라는 서점을 방문했다.

네이버에 길 찾기를 켜고 갔는데도 간판이 작아 그냥 지나치고

다시 거꾸로 돌아 겨우 겨우 찾은 서점이다.

길 찾는 일 내게는 좀 어려운 일인데 늦게 찾게 되지만 재미는 있다.

아마도 내가 혼자이고 좋아하는 곳을 가는 거니깐 그런거겠지.

 

‘달리봄’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담한 평수에 테이블 두개가 놓여 있었고

벽에는 책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나를 맞아 주셨고

QR코드를 마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불러달라고 하셨다.

 

찬찬히 책을 보며, 읽은 책도 있고, 안 읽은 책도 있고, 모르는 책도 엄청 많았다.

페미니즘 서점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런 종류의 책이 참 많았다.

두 바퀴 정도 둘러보다 맘에 드는 책을 드디어 발견 !

살 책을 들고 알바생 앞으로 가서 ‘차를 마실 수 있을까요’ 하며

책도 사고 커피도 마시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 음료가 다 엄청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 특히 커피, 핸드드립 커피

나는 ‘디퍼’ (탄탄한 바디감, 고소한맛) 를 주문했다.

 

알바생은 쿠폰과 함께 카페 사장님께서 키우는 반려 묘 사진이 있는 스티커 3장을

내게 주었다. 나 이런 거 필요 없는데..

필요 없다 말하려다 너무 무안할 거 같아서 일단 받았다.

 

맘에 드는 테이블을 골라 의자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용한 가운데 요조님 스타일의 목소리와 멜로디가 담긴 음악이 나왔다. 너무 좋았다.

알바생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이 기분이란, 참으로 처음 느껴보는 묘한 기분,

낯선 곳에서 낯선 이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다.

 

갓 내린 커피 향이 너무 좋은데 너무 뜨거울 것 같아 못 마시고 있다가

십분 쯤 지났을까, 마셔본 커피는 정신이 번쩍 들게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한 입 마시고 너무 맛있다고 말하려다가 알바생 입장에서 오후에 들이닥친 아줌마가 너무

호들갑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좀 읽고 있는데 어떤 남녀 두 분이 와서 이 고요한 분위기는 안타깝게도 깨져버렸다.

사장님 안부를 묻고 하는 것이 알바생과 사장님하고 잘 아는 사이 같아 보였다.

좁은 공간에 넷만 모여도 북적한 이 공간에 아는 사람이라,

더 이상 내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없음을 의미했다.

 

책을 덮고 테이블 앞에 방명록이 있어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고객들의 자취를 읽다가

문득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게는 볼펜이 없었고

혹시나 해서 방명록 근처를 눈으로 훑었는데 역시나 펜이 없었다

아니, 방명록과 펜을 세뚜세뚜로 놔둬야 하는거 아닌가.

이런 센스 없는 서점 같으니라고, ㅋㅋ

알바생도 자기 일을 하느라 내가 뭘 원하는지에 관심이 없다.

 

어차피 이쯤에서 가려 했으니깐 일어나서 알바생에게 커피가 참 맛있었다고

아줌마다운 멘트를 날리고 쿨하게 나왔다.

 

잠깐 앉았다 책을 읽고 나왔지만 나의 일요일이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만 외출 준비를 하고 맘먹고 나서면 꽤 괜찮은 순간을

맞이 한다는 게 좋다.

종종 나는 이런 날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