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이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사무실 동생이 회사를 관둔다고 한다. 알고 지낸지 18년이 넘었고 같이 일한 것도 15년이 넘었다.
이 정도면 보통 인연이 아니다. 월화수목금 매일 얼굴 보고, 같이 점심을 먹고 함께 희로애락을 나눈 사이다.
그런 동생이 요즘 들어 몸이 안 좋고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아 부쩍 힘든 모습을 보였다.
동생은 성격적으로 쉴 새 없이 말을 많이 해서 화를 푸는 성격이라 습관적으로 내뱉는 불평 불만이 아주 많다.
그런 동생의 마음을 언젠가부터 내가 안 듣고 있었기 때문일까?
의논 한마디 없이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해서 사장님께로 달려가 퇴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순간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짜고짜 관둔다고 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언니들한테 언지도 안하고 사장님께 직진한 것에 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고 안 다니는 게, 개인 사정이라
퇴사 결심한 상태에서 언니들과 의논을 한다고 해도 딱히 달라지는 것은 아닐진데,
그래도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로 무언의 신뢰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 그냥 건조한 회사 동료뿐인 것 같아 씁쓸했다.
우리가 이 회사에 모이게 된 건 혈연도 아니고 서로 의기투합해서 온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그렇듯이 면접을 보고 어쩌다 입사하게 된 그런 경우다.
그래서 다 비슷한 처지로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생의 화가 솟구치는 날엔 내 귀도 너무 힘들어 닫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화제를 전환하여 그 동굴로 같이 들어가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함께 그 동굴에 들어갔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자존감에 바닥을 찍고 내 입에 더러움을 묻혀 누군가를 같이 욕했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필요한 게 이런 것이었다면, 함께 격렬한 공감을 해주었더라면 동생은 회사를 관두지 않고 계속 다녔을까.
언니로서 동료로서 곁을 돌보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아이도 아니고 자신의 마음은 본인이 다잡고 붙들고 다녀야 하는데
몸도 아프면서 그런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한 동생과의 세월로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내 마음에서 동생을 떠나 보내려고 한다.
그래서 이별 선물도, 편지도, 어떠한 인사도 준비하지 못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이별을 다음으로 미루고 있다.
마음이 준비될 때 이별 의식을 예쁘게 해주고 싶다.
지금은 소박하게 떠나 보내는 심정을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