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발성 난청
추석연휴가 끝나는 마지막 날,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더니 인상을 매우 찌푸리며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예전에 이석증이 있었는데 그게 도진 게 아닌지 의심됐다.
마루에서 화장실 가는데도 거의 기어서 갈 정도로 힘들어했다.
안되겠다 싶어 연휴에 문을 연 병원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이비인후과가 12시까지 진료한다 하여 나갈 채비를 했다.
남편은 겨우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병원은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있어서 평소 걸음으로 12분정도만 걸으면 된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이끌고 갈려니 너무 멀게 느껴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통하는 지하1층에 내렸는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잠깐 있으라 하고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산을 가지러 집으로 갔다.
순간 왜 나는 운전도 못하는 건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엘리베이터는 왜 또 이렇게 늦게 내려오는 건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택시를 부르려다 보니 최근 휴대전화를 바꿔서 카카오 택시 어플도 깔지 않은 상태이다.
아. 급할 때 나는 참 쓸모가 없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집에서 장 우산 두 개를 들고 나와 남편에게 하나 주고는 빗속을 뚫고 마을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를 타고 병원을 가는데 고작 네 정거장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방지 턱을 넘을 때마다 버스가 꿀렁거려 남편이 어지러운지 매우 힘들어했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토할 수도 있겠다 싶어 물 티슈와 비닐봉지를 준비했다.
다행히 구토를 하지 않았지만 남편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 후 접수를 하고 진료를 받았다. 이것 저것 검사하고 치료도 하고 약 처방을 받고 돌아왔다.
나는 이석증의 어지럼증이 어떤 느낌인지 앓아본 적이 없어 모른다.
잠깐의 빈혈 같은 어지럼이 아니라 계속 어지럽다면 진짜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다음날 남편은 차도가 없는지 다시 그 이비인후과에 갔고 병원에서는 ‘돌발성 난청’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소견서를 써줬다. 돌발성 난청은 말 그대로 갑자기 귀가 안 들리는 것인데
남편은 왼쪽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했다.
다음날로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남편은 택시를 타고 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받고 난청 약을 한 바가지 들고 집으로 왔다.
돌발성 난청은 초기에 발견되면 치료가 가능하고 2주간 정도 조용한 곳에서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단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 병가를 내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요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돼서 웬만하면 남편의 뜻대로 해주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 내 남편은 돌발성 난청을 앓게 되었을까. 그냥 많이 힘들었었겠다 라는 생각이다.
이직한 회사에서의 적응, 주식공부, 부모님 걱정, 그리고 아이일로 너무 힘들어 그 많은 소음과 걱정을
듣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을까? 순간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 동안 내가 너무 많이 의지하고 많은 일을 떠맡겼던 것 같다.
병의 차도가 있을 때까지 남편이 아무 생각 말고 푹 쉬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요양으로 빠른 쾌유를 바라고 예전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빨리 돌아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