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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어린이 여기 있어요

어린이가 여기 있다.

나는 흔히 어른들 음식이라고 불리는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어른 음식이라고 뭐 따로 정해놓은 건 아니지만 생선회나 생선을 넣고 끊인 탕 종류는 잘 먹질 못한다.

그리고 모양새가 이상한 음식, 예를 들면 해상, 멍게, 개불, 굴, 천엽 이런 것도 못 먹는다.

못 먹는다기 보다는 입맛이 안 맞아서 일 것이다. 뭔가 물컹거리는 식감이 싫고 특유의 비린내도 싫다.

회 같은 경우는 날 것을 먹는 것에 대한 약간의 이질감이 있다.

그래서 회를 먹으러 가면 스끼다시인 새우튀김이나 치즈콘을 먹고 추어탕을 먹으러 가면 돈까스를 먹는다.

사십이 넘어도 한번 형성된 입맛은 잘 바뀌지 않는다.

나물이나 야채는 그럭저럭 거부감 없이 잘 먹게 되었으나 이 바다친구들은 아직도 내겐 어렵다.

딱히 해산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마 고향이 여수인데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엔 매일 생선이 올라 왔다.

집에선 항상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는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해산물을 멀리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고기를 가까이 했다.

하지만 오십 줄 가까이에 너무나도 늦게 나의 잘못된 식단을 깨달았다.

이제부터는 편식은 하지 말아야 하며, 고기섭취를 줄여야 하며,

야채와 과일로 비타민을 보충하고 소식하며 건강해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것만 먹고 살다가는 내 위가 망가진다는 사실,

좋아하는 음식을 늦은 나이까지 조금이라도 먹을려면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식단을 생각하며 먹어야 한다는 것,

다 아는 얘기지만 오랫동안 고착된 습관은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몇 년 전 회사가 용산으로 이사를 오면서 근처 어느 식당에서 추어탕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구수하고 약간 걸쭉한 된장국 맛이었는데 추어를 곱게 갈았는지 거부감 없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갔다.

이날부터는 나는 거국적으로 추어탕을 먹게 되었다.

이제 추어탕 집 가서 돈까스를 찾지 않고 당당하게 어른처럼 추어탕을 시켜먹는다.

추어탕을 먹게 해 준 이 식당이 너무 고맙다.

안 먹던 음식도 이렇게 하나씩 긍정 경험을 해가며 먹어 나아가는 걸까.

그 동안 내 입 맛이 바뀌었을 수도 있는거니까 회나 굴도 조금씩 시도해 봐야겠다.

그러면서 해물도 먹고 안 먹던 음식도 찬찬히 먹어봐야지.

세상의 음식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그 맛을 모르고 죽으면 좀 억울할 것 같아서.

사람들이 나에게 그 맛있는 걸 왜 안 먹냐고 하는 음식의 대표가 바로 굴하고 간장게장인데

그것부터 도전해봐야겠다.

김혼비님의 책 ‘전국축제자랑’에 나오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건 어떨까.

축제도 구경하고 지역 음식도 접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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