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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석주

그 누구보다 그 가족이 잘 되기를 바래왔고 원했다.
예전에 같이 캠핑을 하게 될 때 그 가족에게서 난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완전체인 가족의 모습을 내게 보여줬고
그 누구보다 건강하게 살고 있으며 불평불만 많아 갈등을 일으키는 가족보다 백배 낫다고
가늠해서는 안되는 잣대를 내세워 그들이 우리 가족보다 행복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었다.
요즘 버릇없는 아이들보다는 참 예의도 바르고 생각도 이쁘고 주관도 있다고
나는 그렇게 키울수 없을거라고 생각하며 그 부모님 참 대단하다 내심 존경도 해왔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석주,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고통과 기쁨을 가지고 세상에 온 아이,
내 나이 사십중반을 넘어 만난 그 아이는 한없이 바르고 맑고 순수하고 그 누구보다 건강했다.
몸과 정신이 또래보다 덜 자라 유아기적 사고를 가지고 있지만
부모와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남에 대한 배려는 이기적인 어른인 나보다 낫다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설명해 나가고 남과 함께 뭐든 공유하려는 마음, 이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도 아이인지라 아이들이 가지는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잘 안 씻어서 나는 냄새라든가, 많이 먹겠다고 덤비는 식탐, 놀고 싶어 어른 아이 자리 안 가리고
나서는 모습, 뭔가 자신이 이루어낸 것을 자랑하고픈 마음, 일상을 얘기하고 싶은 욕구.
그 아이는 그렇게 세상에 자신의 존재감을 한없이 드러내고자 했다.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에 많이 시달렸을 법한데 그런 것에 비해 자존감이 높고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를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것일테다.
나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다가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서투른 내색을 하기 싫어
좋은 어른인 척, 세상의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좋은 사람인양 말하고 행동했다.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니였다. 그냥 비겁하고 졸렬한 어른이 되면 안 된다는 어려서부터 배워온
도덕적인 가치관에 의거한 의무의 성격을 띈 말과 행동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좋은 어른이 되고 마음에 거스르는 게 없으면 된 것일텐데,
마음과는 다른 나의 말과 행동은 나에게는 거짓이 되는 것이였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내 마음을 쏙 빼서 얘기하면.
'나는 네가 내곁에 안 왔으면 좋겠어. 와도 잠깐 있다 가면 좋겠어'
'그 더러운 발로 우리 텐트에 안 들어 왔음 좋겠어, 제발'
'그렇게 많이 안 먹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막 흘리고 먹지 말아줘'
'난 너보다 다른 사람하고 더 많이 말하고 싶어'
'난 사실 네가 하는 말의 뜻을 다 알아 듣진 못해'
그러나 마음과 반대로 이야기하며 그 아이에게 부응하질 못할 잔인한 기대를 주었다.
내가 나빴다. 아이들은 괜히 어른에게 치대거나 기대는게 아니다.
그 아이의 상처는 내가 이 기대에 응답하지 않으므로 인해 깊어질 것이다.
처음부터 난 정해놓고 이 아이를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아이는 또 얼마나 반복된 상처를 받게 될까.
그런것이 반복된다고 그때마다 받는 상처가 익숙해지진 않을테다.

미안하다.석주야.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 나의 그릇이 이 모양 사이즈인걸, 더는 키울수 없는거였나봐.
내가 너를 응원한다는 것도 가식인걸 안다.
굳이 이제와 변명이라도 한다면 구체적이지 않은 응원은 안하는게 낫다고,
그냥 난 이제 너를 보게될 때 그냥 최선을 다하련다.
지킬수 없는 먼 약속은 네게 할 수 없다.
더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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