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부부가 전국축제를 다니며 경험하여 쓴 에세이이다.
내가 경험한 축제는 아이 때문에 다닌 게 거의 전부였고,
의무감으로 다녔던 지라 육체적으로 피곤함만 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즐길 수도 있는 것이었네.
의좋은 형제축제, 영암왕인 문화축제, 영산포 홍어축제, 경남의령 의병제전, 밀양아리랑대축제,
음성 품바축제, 강릉단오제, 젓가락페스티벌, 완주와일드 푸드축제, 양양연어축제, 벌교꼬막축제,
지리산산청곶감축제, 총 12개의 축제에 대해 썼다.
그 중에 내 웃음코드에 딱 꽂힌 강릉단오제에 대한 글을 적어본다.
단오제에서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바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
살면서 창포물을 본 적조차 없는 우리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체험 부스에 가서
인당 2000원을 낸 뒤 뒤쪽으로 안내 받았다. 그런데 그곳의 풍경이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가 기대했던 장면은 커다란 나무통에 담긴 창포물을 박 바가지로 퍼 대야에 담은 후
쪼그리고 앉아 머리카락에 한 올 한 올 기름을 발라 주듯 꼼꼼하고 느릿느릿한 감은 후
수건으로 살짝 털고 축제장을 거닐며 불어오는 미풍에 머리를 말리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플라스틱 대야가 주르륵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대여섯 분이
“이쪽으로 와요!” 라고 손짓으로 불러서 다가가면 대야 위로 머리를 숙이게 한 뒤
커다랗고 파란 ‘바께스’에서 플라스틱 바가지로 창포물을 퍼 끼얹으며 머리를 싹싹
아무지게 감겨 주셨고, 저쪽으로 가라며 떠민 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주르륵 놓인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 주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창포물에 머리 감기’라는 어구에서 풍기는 고즈넉하면서도 운치 있는 느낌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인력들이 동원된, 약간 ‘창포물 세발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오른 기분이 들었지만,
많은 인원이 밀리지 않게 빨리빨리 체험하고 지나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같기도 했다.
이런 유의 서비스를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주변머리는 없고 감을 머리만 있었던 우리는 잔뜩
어색한 얼굴로 엉거주춤 선 채 머리 감겨지는 서로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체험장에서 나오자마자
미친 듯이 웃어 댔다. 그럴 때마다 대관령 정상에서 한기가 내려오듯 살짝 젖은 머리카락에서
선선하게 내려오는 창포 향에 취한 우리는 ‘버드 나무’라는 강릉의 맥주 양조장에서 단오절
한정으로 창포를 넣어 만든 맥주 ‘창포 세종’을 마시며 창포에 더욱 취해 갔다.
'독후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리사회 – 김민섭 (0) | 2021.07.16 |
---|---|
경희씨, 요즘 어떻게 지내요 – 김경희 (0) | 2021.07.09 |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입니다 - 장신모 (0) | 2021.07.05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허혁 (0) | 2021.06.30 |
모든 요일의 여행 - 김민철 (0) | 202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