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아파트에서 화재 경보음이 울렸다. 그것도 바로 내가 사는 7층에서 말이다.
평일 저녁 9시쯤 이었는데, 이 시간은 아마도 집안마다 제일 분주하고 소란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화재 경보음이 엄청나게 커서 이 소리를 듣고 도저히 밖으로 나오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그 정도로 심하게 울려대서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가 보았다.
우리 집 부엌 창문 바로 밑에서 빨간 불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 남편도 나왔다.
나는 경비실에 우선 호출을 했다. 그런데 벌써 출동했는지 받지 않았다. 몇 분 있다가 경비실 아저씨가
도착했다. 경보음은 우리 집을 포함하여 총 세 군데서 울렸다. 6층에 한 곳, 7층에 두 곳, 108동이 떠나가라
울려댄 것 이었다. 아저씨가 벽에 붙은 함을 열더니 어떻게 어떻게 조작했더니 드디어 경보음이 멈췄다.
세상 고요했다. 경비실 아저씨는 고장이 난 것 같다며 고친다고 했다.
해결되어 집으로 들어가려다 순간 경보음으로 인해 처음 보는 주민 몇몇이 복도에 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이렇게 경보음이 울려야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게 어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편리하기도 하지만, 도통 누가 사는지 알 수 없기에
사람 사는 맛이 별로 안 나는 것 사실이다.
옆집 705호는 항상 현관문 앞에 택배가 가득 쌓여있는 걸로 봐서는 모두 직장을 나가고 온라인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 같고, 또 702호인지 701호에서는 주말이면 항상 맛있는 냄새가 우리 집까지 흘러 들어오는데,
고기 굽는 냄새, 삼계탕 냄새 등, 음식을 직접 해먹는 걸로 봐서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이렇게 사람이 아닌 물건이나 냄새로 그냥 대충 어떤 사람이 사는지 감을 잡아보는 것일 뿐 누가 사는지는
알지 못한다. 고층 아파트의 수 많은 호수 중에 각자의 본인 집 한 칸씩 속에서 우리들은 매일 그 상자 속을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일을 반복한다. 획일화 되고 기계적인 주거 형태다.
그런데도 서울의 아파트 값은 매일 매일 올라 내 집 갖는 일이 꿈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나는 세월이 흘러 어찌어찌 해서 집을 갖게 되었지만 전세 살 때만 해도 2년마다 오르는 전세 값에 매번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편리함과 익명성 그리고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는 그 자체만으로 안도하나,
서울에 사는 서민들의 집이 그렇듯 좁은 공간에 이방에서 다른 방의 목소리가 들리고 화장실 하나에
몇 안 되는 가족이 번잡하게 이용해야 하고, 심지어 볼 일보는 소리까지 너무 잘 들린다.
학교와 회사를 오가는 사람들은 아파트건 주택이건 어쩔 수 없이 그 곳과 좀 더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살아가야 한다. 서울의 집들은 좁은 면적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나 대체로 이웃에 누가 사는지는 정작 모른다.
살면서 모르는 것들은 인터넷이나 관련 기관에 물어보면 되니 옆집 사는 누군가를 직접 만나서 묻는다거나
하는 일은 진짜 거의 없다. 아마도 층간 소음이 심하게 난다면 이런 일로 찾아가 얼굴을 붉히며 마주할 일은
더러 있겠다. 그러나 좋은 일을 나누는 일은 없다. 가끔 난 감당하지 못할 많은 식 재료가 생길 때 많은 걸음을
걸어 닿는 시댁이나 친정보다 가까운 이웃에 주면 참 좋을 텐데 생각도 하는데 당최 아는 이가 없다.
이웃을 알고 지내고 싶은 건 어느 순간 잠깐의 희망일 뿐 꾸준한 소망은 아니다.
아마 이런 식의 주거 형태와 서로간의 모름이 나한테는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알고 싶음과 모르고 싶음 사이에서 가만히 있으니 계속 모르게 되는 것 같다.
사람이 제일 많이 사는 밀집된 아파트에서 사람을 모르고 사니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많이 살면 알게 될 확률이 더 높은 게 아니라, 더 낮아진다는 사실, 반면 가구가 별로 없는 시골에서는 서로
이웃을 다 알고 지내는 일이 허다한데 우리네 아파트 살이는 외롭고 씁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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