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행을 남에게 털어 놓는 일이 이리 쉬울 줄 몰랐다.
좀처럼 내 애기를 남에게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자잘한 불행은 ‘말해 뭐해’ 하며 뒤로 숨기면서 큰 불행은 떠벌리고 다녔다.
어쩌면 내게 닥친 이 불행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이리도 아프고 힘드니 나를 좀 봐달라고, 내 앞에 이리도 큰 일이 있으니
당신들은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고, 일종의 엄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내 불행은 몸 안에 가득 차서 물리적인 무게가 없는 말부터 내 입을 통해 나와 날려 버려야 했다.
그렇게 조금씩 바람이 가득 찬 튜브의 입구을 열어 공기를 조금씩 빼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공기 중으로 분해되어 고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나,
더 이상 내 몸에, 공기 안 통하는 이 답답한 가슴 안에 담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내 애기를 남에게 잘 안 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지인들이 하는 조언이 듣기 싫었고,
둘째는 이런 고민들이 나의 치부라 생각해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떨지 그것이 부담이었다.
셋째는 내가 나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고민에 대해 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아마도 깊은 생각을 안 한 것으로 보아, 살면서 그렇게 큰 일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살면서 평생 처음 겪어보는 산더미만한 고민 앞에서는 남의 시선 및 조언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고 억울한대로 하소연했으며, 느끼는 대로 슬픔을 열거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신과를 다니며 의사의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인가 보다.
사실 사람들은 자기들 사는 데 바빠서 타인의 슬픔을 내 것처럼 온전히 느끼기 힘들며 금방 까먹는다.
그런 면에서 내가 털어놓은 고민들이 그나마 부담이 적게 느껴져 다행이다.
그냥 만남의 그 시간에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내 일처럼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나도 사실 그들에게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으니깐.
언젠가 내 맘이 조금이나마 편해졌을 때 (그럴 날이 오긴 오는 거지)
지금의 내 아픔이 다 지나간 뒤 그들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할 때가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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