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밴드 '슬기로운 캠핑생활'에 올린 글입니다.
안넝하세요 |
밴드에서 술을 젤 못 마시는 사람, 도라다녀입니다. |
한 잔 마셨는데 열 댓병 먹은 사람처럼 얼굴 빨개져 금방 창피해지는 사람입니다. |
하지만, 이거 아실런지요. |
저는 술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맥주나 와인 정도 밖에 못 마시지만 술을 엄청 좋아합니다. |
마트에서 술 살 때 제일 설레고, 술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거 보면서 |
이거 살까, 저거 살까 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입니다. |
한번은 사고 싶은 크레프트 맥주를 사러 갔는데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걸 알고는 |
판매대앞에서 망연자실 한참 동안 서 있기도 했습니다. |
거의 울 뻔 했다고 하는 표현을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렇게 신중을 기해 소중하고 귀한 간택을 받아 온 술은 기껏 먹어 봤자 |
맥주 500cc 한 캔, 와인 2잔이 끝입니다. ㅋㅋㅋ |
저 아주 쉬운 사람입니다. 술 값이 별로 안 듭니다. |
술은 저에게 짝사랑 같은 겁니다. |
저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을 저를 안 좋아해 속에서 밀어내는 그런 관계, |
이렇게 술은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술은 잘 못 먹는 사람, |
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술을 꼭 잘 먹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
사실 이런게 넘 많습니다. |
어떤 운동을 너무 좋아하는데, 몸이 안 좋아 할 수 없는 거 |
어떤 음식을 너무 좋아하는데, 속이 안 좋아 먹을 수 없는 거 |
노래 부르는거 너무 좋아하는데, 음치라서 잘 못 부르는 거 |
춤 추는거 너무 좋아하는데, 몸치라서 잘 못 추는 거 |
캠핑 너무 좋아하는데, 시국이 이래서 할 수 없는 거 |
갑자기 슬픈 음악이 나와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ㅠ |
중요한 건 제가 술을 못 마시는데도 술 마시는 걸 즐긴다는 겁니다. |
못 마신다고 못 즐길 이유가 없으니깐요. |
우리가 지금 코로나땜에 캠핑을 자주 못 가고 있으나 |
슬캠분들은 그래도 온라인에서 서로 소식도 전하고 예전 사진으로 추억도 하고 |
캠핑하는 것처럼 잼나게 놀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
육체의 노화는 막을 수 없어도 마음의 노화는 즐거운 생각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
오늘도 슬캠분들의 특유의 즐겁고 어린 생각으로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
이상 술 잘 못는 도라다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