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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자상하지 않은 시간

어제 우리 동네에 '자상한 시간'이라는 북카페를 찾아갔다.
내가 생각한 이날의 일과는 여유롭게 책을 고르고, 차를 마시고,
그러고 있으면 주인장님이 와서 나에게 질문을 하는거다.
처음 왔냐? 어떻게 오게 되었냐? 어떤 책을 읽냐? 등을 물으시며 책도 추천해 주시고,
우리 카페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설명도 해주시고 등등 이런 그림을 그리며 갔다.
그러나, 실제 방문한 카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럽고, 앉을 자리도 없고
주인장님은 내게 관심도 없고, 한마디로 내가 주목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였다.
아. 안타깝다. 왜 세상은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항상 다르게 흘러가는 걸까.
나 책 살 수 있는데, 차 마실 수 있는데, 년회원 될 수 있는데, 프로그램 참가할 수 있는데,
그러나 현실은 하고 싶은 의욕과 다르게,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카페에 손님이건 주인이건 각자의 위치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나는 그냥 그날의 그 북카페를 지나치는 손님중의 하나로 되어 버렸다.

책 앞에 서서 아는 책도 만났고 모르는 책도 만났다.
서서 책을 좀 뒤적거리기도 하고, 포스트잇으로 책을 추천한 내용도 읽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다가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며 호기심 가득한 동작을 풍기며
주인장님이 나의 뒷 모습을 좀 보란듯이, 제발 좀 와서 말 좀 걸어라 하는 뒤태를 뿜었는데도
나의 신호는 먹히지 않았고 나는 쓸쓸히 돌아왔다.

블로그에 나왔던 거와는 너무 다른 현실,
친절한 주인장님 어쩌고 저쩌고와는 너무 다른, 전혀 자상하지 않은 시간,
결론은 나랑 안 맞는 카페네, 이런 마음을 안고 친구 편의점에 가서 북카페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고 왔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자주 하는 경험이다.
옷을 사러 가서도 그렇고, 기타 다른 물건을 사러 가서도 흔히 겪는 일이기도 하다.
소극적인 소비 경향을 나타낼 때 흔히 겪는 일상이다.
그래서 뭔가 확실하고 절실하게 사고 싶거나 원할때는 내가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북카페 주인장한테 가서 먼저 묻거나 알아보는 행위가 필요한 것인데,
또 생각해보면 내가 소비자인데 왜 내가 먼저 다가가 그렇게 해야 되나 라는 생각도 들고
암튼 이렇게 궁시렁 되는것도 웃기다.

그래서 난 다음주에 다른 독립서점을 방문하기로 했다.
'자상한 시간'에서 자상함을 받지 못하고 외면 당한 것을 경험 삼아
다른 독립서점에서는 독립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고, 사고, 기회되면 차도 마시고 그 이상의 것도 할 생각이다.
그런데, 참 별거 아닌 북카페 방문에서의 실망감이 아직은 어린 나를 반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 아직도 수줍은 어른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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