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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602 언니

아침 출근길,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들르는 '602'라는 커피 집이 있다.

젊은 여자분이 혼자 운영하는 카페인데, 우리 회사 동료들끼리는 그 분을 '602 언니' 라고 부른다.

3~4평 남짓에 조그만 테이블이 2개 있고, 아침 8시정도에 오픈 해서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문을 닫는다.

나는 아침에만 가서 그런지 602 언니는 매우 바쁘다.

주문 받고 커피 내리고 또 주문 받고 커피 내리고를 무한 반복하는데 너무 바빠 어떤 말도 걸 수가 없다.

어떤 말을 걸어도 친절하고 상냥한 답변을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한번은 어떤 남자분이 와서 '늘 먹던 걸로 주세요'라며 주문했는데 602 언니는 다 무시하고

그냥 '어떤 걸로 드려요?' 했다.

그 말은 '내가 너 먹는 커피 취향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니' 라는 답변이다.

그 손님 딴에는 나는 이곳에 자주 오므로 내가 커피 먹는 취향 정도는 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그걸 1도 생각 안하고 싹 리셋시켜 '원하는 걸 말하라' 라고 한 거다.

진짜 걸크러쉬하고 명쾌하다. 나 같으면 어쩔 줄 몰라 '아. 뭐 드셨더라~ 아아? 뜨아? 아, 라떼인가'

하고 얼부머리며 한 개라도 걸려라라는 심정으로 계속 커피를 나열했을 것 같은데,

602 언니는 카리스마가 남 다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우리 회사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근처 맛있는 식당이 있나해서

매의 눈으로 찾던 때가 있었다.

우연히 점심 먹고 '602'에 들어가 커피를 사고 602 언니 성향도 모른 채 이곳 맛있는 식당이

어디 있냐고 천진난만하게 물었었다.

그랬더니 602 언니는 '저 점심 안 먹어요' 이렇게 답변했다.

그 말인 즉  '나는 점심을 먹지 않으니 이 곳 맛있는 식당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사무실 언니가 '점심을 안 먹어요?' 하며 되물었더니. 다시 이렇게 답했다.

'네 저 그냥 집에서 싸온 빵 같은 거 먹고 그냥 오후 늦게 퇴근해요'

어머나, 일만 하다가 간다는 건데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서 그런 건가

아무튼 맛 집을 모른다고 하니 대화가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질 않는다.

 

저번에는 어떤 여자 손님이 커피를 시키면서 602 언니에게 떡인지 빵인지 자신이 만들었다고

선물로 주는걸 목격했는데 602 언니는 어떤 말도 없이 그냥 목례만 하고 받았다.

 

손님과는 어떤 말도 잘 나누지 않는 이 쌀쌀맞은 응대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돈을 내고 무언가를 소비하는 쪽이 갑인데 이 커피 집에 오는 손님은 모두 을에 가깝다.

기계적인 602언니의 응대에 이젠 그려러니하고 커피만 받아 들고 나온다.

카페 602를 이용하는 모든 고객은 602언니를 짝사랑 하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침에 카페에 가면 늘 앉아있는 젊은 남자가 있다.

보통 출근길 아침이라 매우 바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테이크 아웃을 해가는데

이 남자는 개인 텀블러가 있고 늘 테이블 앞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첨엔 손님인가 했다. 그러나 손님이라 하기에 아침부터 너무 눌러 앉은 분위기이고

그렇다고 지인이라고 하기엔 602언니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의문의 남자. 누구인가, 분명 아는 사람 같은데, 남자친구? 남동생?

항상 물음표를 가지고 있다가 드디어 두 분이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갑자기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 아침이 있었는데 그 남자분이 번잡하니깐 자리에서 일어나며

602언니에게 손 인사를 하며 카페를 나갔다.

그때 남자분의 손만 보고 602언니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아, 봤어야 했는데, 눈빛을 보고 연인인지, 혹은 남동생인지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 못 봤다.

다음 번에 놓치지 않고 꼭 둘의 눈빛과 대화를 목격하리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항상 궁금증을 자아내는 602언니, 언니가 말하지 않아서 더 호기심이 생긴다.

남의 일이 아직도 궁금한 사십 대 아줌마, 대체 왜 궁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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