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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챙김

아이가 뭔가 자꾸 빠뜨리고 다니고 잘 챙기지를 못한다.
휴대폰을 놓구 가서 버스를 못 타 지각을 하고,
국어책을 가져와야 하는데 영어책을 가져오고,
약속을 했는데 잊어버리고,
가통이나 전달,준비사항을 부모에게 전달 안하고 등등,
좀 늦는건 괜찮은데 아예 통으로 까 먹는 경우를 어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른이 된 내 입장에서는 아이의 이런 행태가 이해가 안 가서
내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한 번 찬찬히 생각해 보았다.

국민학교 시절, 아이들이 너무 많이 태어난 70년대,
한 학년이 20반 가량 되었으며, 한반에 60~70명은 기본이며,
그것도 교실이 모자라 저학년때는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헷갈려 오전반인데 오후반으로 종종 가서 남들 다 타는 개근상을 못 탔다.

중,고등학교 미술 시간은 지금처럼 미술교구를 준비해주지 않는 관계로
모두 개인이 물감이며, 스케치북이며, 붓을 준비해서 가져가야 했는데
진짜 대부분 이 준비물을 잘 못 챙기고 갔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미술시간이 있는 요일에 학교에 도착하면 항상 미술 준비물을 안 가져온 걸 뒤늦게
알게 되어 준비성 없는 나 자신을 많이 미워한 기억이 있다.
그 땐 진짜 내가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왜 그랬는지 통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때는 음악시간에 실기 시험이 있었는데 바로 악기 연주였다.
여자애들은 어렸을 때 피아노를 많이 배우니깐 피아노가 기본적으로 많았고
그리고 기타가 조금 있었고, 누구나 할 줄 아는 리코더가 있었다.
난 어렸을때 피아노를 못 배워 피아노는 글렀고,
그렇다고 남들 다하는 쉬운 리코더는 또 불기 싫고
마침 집에 오빠의 기타가 있어, 칠 줄 모르지만
기간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기타 연주를 하기로 하였다.
손가락에 궃은 살이 배기고 어쩌고를 하다 보니 기본 코드를 익혀
진짜 쉬운 곡 하나를 겨우 겨우 마스터 했다.
그런데 시험 보는 날 진짜 바보같이 기타를 깜박하고 안 들고 간 것이다.
나 왜 그랬던 걸까. 이건 보통 준비물이 아닌데,
시험날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던 걸까,
어케 전쟁터에 나가면서 총을 안 갖고 나가냐는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 없이도 준비성이 없었고 진짜 잘 못 챙겼던 것 같다.
이날, 기타 연주는 다른 친구 기타를 빌려 어찌어찌 시험을 봤지만
그런 내가 너무 싫어 시험 보고 나서 막 서럽게 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서 이런 것들은 대체로 나아졌고
지금은 안 잊어버리고 아주 잘 챙기는 편이다.
지금보니 어린 시절에는 내 아이보다 내가 더 했던 것 같다.
아이는 아이이기 때문에 못 챙길 수 있고 빠뜨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성장의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나를 또 시험에 들게 하는 많은 상황들
힘들지만 이 또한 내가 지켜보며 견뎌내야 한다.
나도 아이도 지금의 이 나이는 처음 사는 것일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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