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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여수하면 금오도

올 여름 휴가로 여수에 다녀왔다. 나는 여수에서 태어나기만 했을 뿐, 살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어렸을 때 아빠 사업으로 인해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수는 나에게 그냥 엄마, 아빠의 고향이다. 한가지 즐거운 기억이 있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겨울 방학 때 여수에 있는 친가 댁과 외가댁을 오가며 겨울 방학 내내 아주 신나게 보냈었다.

그 후로 한번도 여수에 가보지 못했다. 너무 멀어서, 너무 바빠서였다.

집안 대소사는 엄마, 아빠, 오빠 선에서 모두 해결하였다. 여수 갈 일이 생겨도 굳이 나까지

대동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깐 거의 40년만에 찾은 여수였다.

내가 기억하는 여수는 친가 댁과 외가댁이 전부였다. 친가댁은 여서동, 외가댁은 문수동이었다.

두 집 주변에는 논밭이 있었고 찻길이 없었으며 차를 타려면 걸어서 멀리까지 나가야 했다.

외가댁은 전통 한옥 모양에 길게 툇마루가 있었고 별채가 하나 있었다.

화장실은 소, 염소 있는 곳에 있었으며 그 유명한 푸세식 변소였다.

변소 바닥이 나무라서 나무 틈으로 항상 오물이 보였으며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다.

하지만 항상 뛰어 놀 수 있는 흙 바닥의 운동장만한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리어카를 타고 돌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매일 사촌 언니 오빠들과 노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내 인생에서 의식 없이 촌스럽도록 즐거운 시간을 뽑으라면 아마 이 때가 아닐까 싶다.

친가 댁은 벽돌로 지은 신식 양옥집 이었는데 역시나 화장실은 본채와 떨어져 있었다.

역시나 푸세식 스타일 이었는데 그래도 바닥이 시멘트라서 외가댁보다는 나았다.

이곳에서도 사촌들이랑 엄청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사촌 언니 오빠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소식이 궁금하다.

아마도 각자의 삶을 사느라 분주하고 많이 늙었을 것이다.

가끔 엄마를 통해 듣는 그들의 삶은 불행한 사람도 있었고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불행과 행복의 기준을 내가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사람이 죽거나 법원에 왔다갔다하는 일이 잦다면

분명 슬픈 일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다 까발리며 살지 않기에 나름의 행복과 아픔을 지닌 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이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우리 엄마도 나의 기쁨과 슬픔을 다 모르는 것처럼.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사십 년 만에 갔으니 강산이 네 번 바뀌는 것이다.

그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내가 찾은 여수가 너무나 도시였고 매우 관광지였으며

여수밤바다 핫플레이스였다. 예전엔 할머니네 집이 논밭풍경의 시골이었지만 지금은 개발되어 시내 중심가가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조사한 여수 관광지를 열심히 다녔다.

여수 밤바다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케이블카, 산책로로 예쁘게 다듬어 놓은 오동도,

경치가 아름다운 여수 예술랜드, 맛집이 즐비한 이순신 광장주변 등을 탐방했다.

휴가 갔는데 여기서도 분주히 다니는 내 모습에 약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냥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뒹굴 거리며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을까.

누가 가라고 떠민 것도 아니고 숙제를 내 준 것도 아닌데 의무감으로 참 부지런히 다녔다.

언제 이 먼 곳 여수까지 또 오냐는 마음으로 온 김에 여기저기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서울만큼은 덥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여름이라 낮에 관광을 한다는 게 꽤나 힘든 일이었다.

관광을 하다 차를 타면 에어컨 바람에 좀 시원해져 쉬기도 했으나, 운전을 계속해야 하는 남편은 힘들었는지

둘째 날 급기야 병이 나고 말았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체했는지 막 토하고 설사를 했다.

놀러 와서 술도 못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든 모습은 첨이었다.

왜 휴가를 와서도 이렇게 아등바등 보내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휴가 떠나기 전날은 컨디션이 안 좋아 이 여행이 가능할지 가족 몰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출발 당일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기차에 오를 수 있었지만 휴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휴가가 관광을 하기 위한 목적은 아닌데 그 동안의 휴가를 돌이켜보면 쉴 새 없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딘가를 다니고 몸과 마음을 참 많이도 혹사시켰다.

직장인의 짧은 휴가에 하루쯤 멍 때리고 있을 여유가 진정 없는 것인가.

 

그래도 여수를 갔는데 좋은 게 한가지쯤은 있었다. 둘째 날 오후에 ‘금오도’ 라는 섬에 갔었다.

배를 타고 30분정도 들어갔다. 꽤 큰 섬이었는데 내가 볼 때 그나마 여수다운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초, 중,고등학교 각각 하나씩 있고 편의점도 세븐일레븐이 유일하게 하나 있었다.

차를 타고 시골길을 드라이브 하는 기분으로 돌았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정말 희한하고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마침 기름이 떨어져 주유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주유소가 없는 것이다.

남편이 인터넷을 막 검색하더니 농협에 가면 주유를 할 수 있다고 하여 금오도 농협을 찾아갔다.

농협에 도착했는데 아무리 봐도 역시나 주유소가 없었다.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 가운데 남편이 농협에 들어가 물어본다고 차에서 내렸다.

한참 뒤에 돌아온 남편은 기름값은 농협에서 결재하고 기름은 다른 곳에서 넣는다고 한다.

어디? 하며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농협 직원이 트럭을 타며 자기 차를 따라오라고 했다.

우리는 트럭 뒤를 졸졸 따라갔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머리 속의 물음표와 함께 이 상황이 웃겨서

입가에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몇 분 후에 트럭이 어떤 창고 앞에 멈췄고 우리 차도 같이 그곳에 멈췄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곳엔 주유기가 없었다. 도대체 기름을 어디서 어떻게 넣는단 말인가.

농협 직원이 트럭에서 내리더니 그 곳 창고 문을 확 열어 재꼇다.

두둥~ 그 곳엔 그 곳엔 그곳에는 세상에 만상에 거짓말처럼 주유기가 있었다.

마치 티브에서 마징가젯트가 나오는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농협 직원은 주유기에서 호스를 빼더니 우리 차에 주유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유를 마치고 호스를 제자리에 놓더니 창고 문을 훽 닫고 트럭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금오도의 주유 시스템이 너무 웃기고 재미나서 한참 동안을 웃었다.

이번에 여수에서 제일 즐거웠던 기억이라 함은 난 이 금오도에서 주유사건이라 하겠다.

사건이라고 할 것 까진 없지만 주유를 하기 위해 이런 여정을 하게 된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바쁜 서울에서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다. 섬과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케이블카에서 여수 밤바다를 본 것보다 더 좋았다.

여수 밤바다는 나름의 아름다움으로 매력이 있지만 나는 이 금오도 주유의 기억이 더 흥미롭게

내 삶에 오래 박힐 거라는 걸 안다. 이런 뜻하지 않은 의외의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금오도를 아주 재미있고 정겨운 섬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어렸을 땐 여수하면 오동도였는데 이제는 여수하면 금오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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