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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합평의 시간

누군가 내가 쓴 글에 대해 평을 한다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었다.

사십 넘어 어떤 창작물의 결과를 잘 모르는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게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부끄럽고 민망했다.

사람들이 말해준 피드백을 종이에 옮겨 적으면서도 나에게 왜 이러냐는 심정으로 빨리 이 시간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칭찬도 있었고 격려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소를 잃지 않고 예민하게 조언해주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재료 삼아 수정고를 썼다.

점점 내 글이 비문에서 올바른 문장으로 바뀌었고 글에 대한 방향이 생겼다.

너무나 고마운 조언이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갑진 기억이다.

하지만 처음에 어떤 분이 내게 조언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주일 동안은 가슴에 비수가 되어 계속 생각났고 화가 났고 좌절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내 글은 산문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묘사가 하나도 없어 마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일기 같다고.

그리고 생각을 안하고 쓴 것 같다고 했고 결과적으로 재미가 하나도 없단다.

마지막 말에 머리를 쿵 맞은 듯 나도 모르게 안색이 굳어졌다.

그 사람이 보기에 내 글은 그렇게 긍정으로 봐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래 나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생겨 먹었어. 아무 생각 없어,

어떻게 알았나? 나 아무 생각 없는 거, 이게 뭐 어때서, 그러는 당신 글은 그걸 에세이라고 볼 수 있나.

나는 신문기사 읽는 줄 알았네. 당신 글이 진짜 더 재미없는데, 나는 뭐 할 말이 없어 당신 글에 합평을 안 한 줄 아나.’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교양 있는 사람이니깐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날은 너무 기가 막혀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다음날도 화가 나서 남편하고 여동생한테 이런 엿 같은 일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그들은 모두 내 편이기에 어딜 가도 그런 사람이 있다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런 혹평이 있은 후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히고 생각해보니 그분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더라.

맞다. 내 글은 묘사가 진짜 없다. 묘사를 배운 적이 없으니 쓸 줄도 몰랐다.

그래서 글쓰기 수업하러 온 거고 배우는 중이니깐 알아가면 되는 거다.

비문도 내가 비문인 줄 모르고 막 썼다.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어디다 글을 내 보일 일이 없었으니깐.

그리고 문장 띄우는 것도, 과거형, 현재형 쓰는 것도 이 수업에서 배웠다.

그렇게 하나 하나 알아가는 거겠지. 하지만 생각을 안하고 쓴 건 아니다. 그분의 생각 없음과 나의 생각 없음이 다르다는 걸 안다. 그분은 내가 문장의 기본기가 없다는 걸 그렇게 생각 없이 썼다고 말한 것 같다.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작가의 시선이 있다고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 칭찬에 날아갈 듯이 기뻤고 열심히 쓰는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한 마음을 풀고 좋은 글로 재미난 글로 보여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홀연 사라졌다. 그 날 이후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그 분은 평소에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게 막말 평을 하셨는데 그 날은 민망하게도 선생님한테도 지적을 하여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다. 모르겠지만 주최측에서 어떤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 잘 모르겠다.

 

이 수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내 글에 대한 적나라한 평을 듣게 되었다. 분명 좋은 경험이었고 귀한 시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수업에 또 참여하고 싶고 꾸준히 글쓰기 연습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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