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는 명절이 참 좋았다. | ||
사촌들이랑 한복입고 이집 저집 다니며 세배하고 세뱃돈 쏠쏠히 받아서 | ||
문방구가서 뽑기도 하면서 세뱃돈을 다 날려도 너무 좋았다. | ||
하루종일 논 것도 아쉬워서 오랜만에 사촌들과 만났으니 | ||
함께 우리집에서 자게 해달라고 막 엄마한테 이모한테 떼를 쓰기도 했다. | ||
그래서 한 방에서 같이 자기라도 하면 떠들고 웃느라 좋았고 | ||
엄마는 얼른 자라며 막 야단을 쳤었다. | ||
아직까지도 그런 기억이 나는걸 보면 정말 재밌었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 ||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은 프랑스에서 프랑스 남자랑 살고 있는 사촌, | ||
그리고 이혼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못본지 꽤 된 또다른 사촌, | ||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겠지. | ||
그 명절의 추억은 모두 어린 날의 추억이고 현재는 재현될수 없는 일들이다. | ||
아마 그 사촌들도 그 시절 촌스럽게 빛나게 재미있었던 | ||
그 기억을 가끔 떠올리며 산다고 믿고 있다.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 ||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면서, 특히 결혼을 하면서, | ||
명절은 이제 나에게 하나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 ||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고 차례를 지내고 같이 밥을 먹고 인사를 하고 | ||
시어머니한테 돈과 선물을 좀 드리고 밥을 차리고 치우고 | ||
또 친정에 가서 인사를 하고 조카들 세뱃돈 주고 | ||
엄마한테 선물과 돈을 좀 드리고 밥을 차리고 치우고 | ||
상투적인 질문과 대답이 왔다 갔다하고 관심도 없는 스포츠 티브이 채널을 봐야 하고 | ||
보고 싶은 예능을 봐도 절대 집중 안되는 그런 분위기에 | ||
이 시간들이 좀 빨리 끝났으면 생각할때가 너무 많고, 빨리 집에 갔으면 한다. | ||
이것이 그렇게 너무 싫은것은 아닌데 가끔은 이 빨간날이 온전히 내 시간이면 | ||
얼마나 좋을까를 지금도 십수년째 생각하고 있다. | ||
이것은 시댁과 친정의 공통사항이며, 친정이라고 막 봐주고 예외가 없다. | ||
나도 물론 친정엄마 만나고 여동생 만나면 반갑지만 주중내내 회사에서 일하고 또 명절이라고 또 왔다 갔다 하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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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깝고, 허리 아픈데 노동력도 소비해야하고 | ||
뭔가 내 소중한 시간을 도둑맞은 기분에 억울하기까지 하다. | ||
명절의 과제로부터 벗어나 어떤 한해쯤은 좀 자유롭고 싶다. | ||
그것이 바로 올해이면 얼마나 좋을까. |